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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와 민족성 풍수지리설은 흔희 풍수사상이라 칭하는데 그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조화된 풍토와 자연환경은 풍수가 궁극적으로 따라서 그것은 민족의 정신적 유산이자 관습의 축적임을 암암리에 표출하고 있습니다. 풍사사상을 알아봄으로써 우리 민족의 풍수와 민족성 자연관토지관지리관을 추출할 수있으리라는 가정은 너무나 타당하며 풍수사상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조화와 균형의 감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화된 풍토와 자연환경은 궁극적으로 풍수가 찾아내고자 하는 이상향의 상태임이 분명합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산수상보한 조화 균형의 땅에 풍수와 민족성 사람의 마음을 지각상 포근히 감싸줄 수 있는 유정한 곳 그러나 속된 기가 흐르지 않는 성소를 추구하였떤 것으로 추정됩니다 풍수사상의 측면에서 본 우리민족의 자연관은 다음과 같습니다... 2017. 7. 18.
현대의풍수학3 풍수학이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변했는지의 내용 3번째입니다. 한편 산곡의 경우는 수해가 크게 현대의풍수학3 문제되지 않기 때문에 득수에 대한 술법을 우선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이때는 오히려 요풍에의 두려움등 장품법에 치중할수박에 없으며 국지 기후적인 영향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얼마나 안온한가하는 다시말해서 주변산세의 환포성을 염두에 두어야합니다. 양기양택음택은 이중환의 다음 여섯가지 지리조건을 적용하여야합니다. 관진은 이것이 서로 겹칠수록 현대의풍수학3 대길의 지세 첫째 수구는 휴소공활하지 않고 반드시 관진이 있어 안으로 평야가 전개되는 곳이 좋은데 둘째, 야세는 무릇사람이 양기를 받아야하므로 천광을 많이 받을 수 잇는 광야가 더욱 길지라 상정하였습니다. 셋째 산형은 주위의 산이 너무 고압하여 해가 늦게 뜨.. 2017. 7. 18.
현대의풍수학2 풍수학의 현대사회에서의 실용성에 관한 내용입니다. 한양모악한양은 오늘날 서울의 사대문 안쪽이고 모악은 신촌서강일대입니다. 모악은 하륜이 거의 독단적으로 현대의풍수학2 주장하였던 땅으로 나라의 중아에 있어 교통도 편리하고 수리의 이점도 있으나 한양에 비할 만한 곳이 되지 못하고 한동네에 위치하여 궁전과 종묘를 넓게 잡을수없어 명당 좌처가 협착하고 주산이 저미하여 겨울철 한랭한 북서계절풍을 막기어렵고 수구가 관쇄하지 못합니다. 개경과 한영은 풍수상 장풍과 득수를 고루 갖춘 거시적 안목에서 보자면 현대의풍수학2 매우 비슷할 수 있지만 국토의 통할이라는 측면에서는 기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특히 추가령지구대를 이용하여 함경도지방과의 유통을 꾀하는데 있어서는 한양은 풍수상 장풍과 득수를 고루 갖춘 한야으이 입지가 .. 2017. 7. 18.
현대의 풍수학 오늘날 풍수지리는 미신으로 현대의 풍수학 치부되어 모멸을 받는 입장에 처하여 있으나 한편으로 대부분의 살마들은 그 효능을 100퍼센트 부정하지못하고 은연 중 기대하는 측면이 강하게 남아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근래에 이르러 전통사상 전반에 걸친 새로운 관심과 함께 풍수지리설도 몇몇분야의 소장학자들로부터 부분적으로 긍정적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주로 지리학과 건축학분야에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명당으로 진입에서 취락입지,집터잡기,대지내의 건물배치에 관한 풍수지리설의 입장으로 당에 대한 유기적 관련성의 강조는 오늘날 매우 합리적인 평가라는 것입니다. 지현형태의 동구 배치가 환경심리학에서 말하는 완충공간의 구실을 하고 있따는 점에서 마을이라는 개인공간에서 외부의 사회공간으로 나아갈 때 개인이 받는 심리.. 2017. 7. 18.
조선시대풍수학3 역사로는 촌락입지에서 조선시대풍수학3 배산임수남면산록같은 곳은 북반구 중위도 지역의 민족들에게 공통된 길지였습니다. 우리민족도 마찬가지의 지리관을 지녔으며, 이를 더욱 발전시켜 삼국 초기에는 자생적인 지리사상을 형성하여 온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풍수지리설의 확립된 이론체계는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것이 명확하고 중국의 경우 언제어떻게 구체적인 이론으로 정립되었는지 분명히 알 수는 없으나 사신도로 대표되는 천문사상이 첨부되어 고대의 천부지모사상에 음양론이 가하여지고 첨부되어 전국시대 말기부터 구체적인 이론으로 정립되었다는 설입니다. 기원전 4~5세기경의 이 시대는 도참비술적 사상이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한대에 이르러 음양론이 본격적으로 도입됨으로써 풍수지리설이 정착되게 됩니다. 남북조선시대에 이르.. 2017. 7. 18.
조선시대풍수학2 세번째로는 득수법이라 하는 내용입니다. 중국의 풍수지리에서는 산보다도 오히려 물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며 많은 풍수서에서 득수법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풍수지리설이 흥성하였떤 중국 조선시대풍수학2 북부지방의 적은 강수량 상황이 반영됬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 풍수지리설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고 그러나 산수를 음양에 비기하는 전통적 사고방식에 따라 득수법을 무시하였던 것은 결코아닙니다. 크게보아 물은 반드시 길한 방위로부터 흘러들어와 흉한방위로 나가야하며 물에서 탁취가 나거나 흐리면 안되고 혈전에 공손히 절을 올리듯 유장하게 지나가야 하며 직급류하여 혈을 향하여 쏘는 듯 내질러 가는것은 좋지 못하고 이때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따로 있는 것처럼 보이면 불길한 것이며, 남녀상배하고.. 2017. 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