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풍수지리는 미신으로 현대의 풍수학 치부되어 모멸을 받는 입장에 처하여 있으나 한편으로 대부분의 살마들은 그 효능을 100퍼센트 부정하지못하고 은연 중 기대하는 측면이 강하게 남아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근래에 이르러 전통사상 전반에 걸친 새로운 관심과 함께 풍수지리설도 몇몇분야의 소장학자들로부터 부분적으로 긍정적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주로 지리학과 건축학분야에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명당으로 진입에서 취락입지,집터잡기,대지내의 건물배치에 관한 풍수지리설의 입장으로 당에 대한 유기적 관련성의 강조는 오늘날 매우 합리적인 평가라는 것입니다.
지현형태의 동구 배치가 환경심리학에서 말하는 완충공간의 구실을 하고 있따는 점에서 마을이라는 개인공간에서 외부의 사회공간으로 나아갈 때 개인이 받는 심리적 불안감과 충격을 구불구불한 동구가 완충공간으로 흡수하기 때문에 풍수지리적마을배치는 합리적이며 타당하다는 견해입니다.
묘지풍수의 경우는 2대우너칙인 좋은일을 한 가문이 길지를 차지한다와 지하수맥과 관련된 자리가 좋지 않다는 실증적 사례들이 발표되고 있으며, 주택의 경우에도 상주 공간인 방은 구들에 반드시 동판을 깔아서 지하수맥으로 인한 피해를 제거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시되어 있고 산소의 크고 작고 장대하고 누추한것은 문제되지 않으며 사실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망각하고 막대한 돈과 노동력을 투입하여 넓지도 않은 국토를 훼손하고 있는 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서울시 면적 지역의넓이보다 훨 씬더 넓은 측면의 면적을 묘지가 차지하고 있고 날이 갈수록 그 면적이 늘어가고 있는 현실적 책임의 발단이 풍수지리적 사고에 잇따는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국도의 풍수적해석으로는 우리나라엣너는 선호불일사적성장단처럼 풍수사상이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논의도니것은 조선 개국 초 수도를 정할때였습니다.
그때 후보지로 거론된곳은 잠깐 물망에 오르다가 그친곳도 있었으나 논의대상에 꾸준히 오른 개경계룡모악한양등은 오늘날의 도시입지론적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 타당성이 돋보입니다.
첫번째 개경은 전 현대의 풍수학 왕조의 수도로서 일차적으로 수도의 물망에 올랐는데 한반도의 중심부를 차지하며 예성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강화 북안에 연접되어 있는지역이며 백두산의 영기가 간백산 북포태산 남포태산 등 마천령산맥을 거쳐 두류산에서 함경산맥을 만나고 낭림산맥을 지나 원산 서쪽 마식령산맥에서 남서향하여 임진강 상류에까지 연결되는 형태입니다.
그러나 개경부근에 이르러서는 산세의 험준함은 없는 편이고 대체로 저산성의 구릉지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저산성이기는 하짐나 주위가 거의 모두 산지로 되어 현대의 풍수학 분지상을 이루고 잇기 때문에 규국은 넓지 못한 편이고 왕궁의 소재지인 만월대를 중심으로 북쪽 5리에 동쪽으로는 일출봉과 남산, 서쪽으로는 월출봉과 봉명산 개경의 진산인 부소 또는 곡령이라 하는 송악산 그 북쪽으로 천마산 성거산 그리고 국사봉이 있는데 천마산과국사봉이 마주하고있는 계곡사이에는 부성으로서 대흥산성이축조되어있습니다.
남쪽으로는 외성터인 용수산진봉산광덕산군장산등 해안지대로서는 상대적으로 험준하다고 볼수있는 산세가 둘러싸고 있어 오관산의정기를 축적할 수 있는 풍수상 전형적인 장풍국입니다. 오관산이 개경 정기의 진원지임은 택리지에도 명백히 지적되어 있는데, 이 산은 도선이 말한 수모목간의 형세로 산세가 극히 길고 심원하여 대단하고 송악이 되었는데 풍수가에서 말하는 주천의 토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기세가 웅건박대하고 풍기가 평양에 비해 더욱짜임새 있고 견고하며 의사가 포축, 혼후하며 동서로 강이 있고 남쪽바다로는 강화와 교동 두 큰섬이 가로막고 있으며 북으로 한강의 현대의 풍수학 물을 가두어 은연중 하류는 앞산의 바깥을 둘러싸서 깊고 넓습니다.
박연화담등 주위경관이 모두 아름다우며 그러나 장풍에 따라 주변산세가 조밀하여 국면이 관광하지 못하고 북쪽 산여러계곡에서 흘러나오는 계류수는 모두 중앙에 모이기 때문에 여름철에는 수세가 거칠고분류가 급격하여 순조롭지못한 결점이 있습니다.
이와같은 역세의 수덕을 진압하고, 하천의 범람이 우려되는 취약지점과 합류점에 지덕을 비보하기 위하여 도선의 사탑비보설을 응용하여 계류의 합류점과 내수구에 사찰을 건립하였습니다.
사원을 건립함으로써 인공 건조물에 의한 하천의 측방 침식을 억제하고 승려들로하여금 하천을 감시하게하는 동시에 유사시 그들의 노동력으로 대처 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