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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스나요시의 시대

by 건강맨1213 2017.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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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쓰나요시의 초기정치에서는 도쿠가와 이에 쓰나에는 친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동생인 도쿠가와 쓰나요시가 5대 쇼군으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에스나 시대에 절대적인 권력을 자랑하던 사카이를 파면하고 자신을 쇼군으로 만들어준 노중인 훗타 마사토시를 그자리이 앉힙니다. 또한, 이치젠 마츠다이라가 아리스 미야케 친왕을 쇼군으로 옹립하려고 하다가 실패하였는데 권력 교체의 비극인 것이었습니다.

아리스 미야케 친왕을 옹립하는데 실패한 사카이는 좌절하여 1년 후에 사망하였으며 그가 아리스를 옹립하여고 했던 진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충성심을 드러내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라는 설도 있습니다.

이 시대가 되면서 점차 평화적이게 되었는데 자연 재해 대책등의 공공 사업에 많은 지출을 하고 있어서 막부의 재정이 점점 위기인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도쿠가와 쓰나요시와 훗타 마사토시는 천화의 치료라는 개혁을 실행하게 되었는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기강을 바로잡는 것을 첫번째 목표로 하고  불성실한 다이묘들을 적발하여 처벌하였으며 집안 소란등과 부정을 저지른 자들도 용서하지 않았으며 성실하게 일하는 다이묘들에게는 표창을 하여 신상필벌을 확실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정치에 임하는 자들에게 막부의 재정과 대관등의 부정행위를 방지하게 하였으며 지금과 같은 감사를 구체화 했다는 것에 상당한 가치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카와무라라는 상인의 이야기가 있는데 미에현 미나미가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카와무라는 13세에 목수일을 배웠는데 막부와 다이묘의 토목공사 하청을 하였습니다.

일반적인 토목인과는 달리 물자의 효율적인 수송로를 개척하여 대폭적인 운임시간 단축을 하였는데 어떤 항로를 선택해서 가는것이 가장 안전하고 빠르게 도착을 하며 배의 항로를 보호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연구한것이 카와무라였습니다.

이 당시에는 해적등과 같이 노략질 하는 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멀리가더라도 안전한 곳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 항로가 안전하다는 소문이 이 항로의 종점에 있는 오사카는 천해의 무역항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도쿠가와 스나요시도 후계자가 없었는데 후에 태어난 아이도 일찍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1685년부터 수차례에 걸쳐 후세에 겐로쿠살생 금지령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포고령을 내렸는데 아이가 태어난 것은 전생에 살상을 했기 때문이라 하여 기아나 고아를 정촌에 양육의무화를 하거나 함부로 조류등을 쐈다는 이유로 처벌을 하는등 불만이 많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유기견들에게 밥을 주어 키우라는 명령도 하였는데 서민들은 우리의 생활도 괴로운대 개에게 먹이를 주느냐고 말이 많았는데 개 보호에 대해 많은 지출을 한 것이 막부의 재정에 타격을 주었는데 그도 그럴것이 나카노 시설에서 10만마리가 넘는 개를 보호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장소가 부족하여 주변마을에 양육비를 지불하기 까지 하였는데 스나요시의 정책은 오해하기 쉽지만 실상은 모든 생물을 막부의 관리하에 두겠다는 굉장한 생각의 법률이었는데 농민 보호를 명목으로 농작물을 망치는 동물의 예방책으로 막부에 도전하기 위한 도구를 빼앗아 쿠테타를 막는 현실적인 면도 있었습니다.

좋은 면도 있었기 때문에 쓰나요시의 정책은 사후에도 일부 제도는 존속하엿는데 이와 더불어 죽은 사람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법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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