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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막부의 구조

by 건강맨1213 2017.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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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막부의 주요 특징은 쇼군에게 권력이 남아 있도록 되어 있는 구조인데 다이 다이묘는 막부 요직에 있었고 교통 요지에 위치해 있었지만 영지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었으며 도자마 다이묘는 영토가 많은 사람이 많았지만 막부 요직에는 취임할 수 없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후손인 심팡들은 막부 말기를 제외하고는 막부의 요직에 종사하지 않았는데 친족들에 의한 탈취를 방지한다는 목적이었으나 실제로 8대 장군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기슈에서 11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나리난 한가정에서 1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는 기슈에서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한 가정 출신입니다.


막부 붕괴 이후 16대 당주와 18대 당주가 도쿠가와의 아이즈 마츠다이라 가문 출신으로 막부와 단절되지 않도록 여러가지 고안하였는데 도쿠가와 가문의 덕은 한자에서 덕에서 지금도 쓰고 있습니다.

막부는 다이묘들의 불온한 움직임을 막고자 다양한 방법으로 정해진 규칙을 만들어 체포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 대표적인것이 무가 제법도로 총칭되는 제도인데 도요토미가 죽은지 얼마 안된 1615년에 나온것으로 영주의 거성은 1만이고 나머지는 3성만 인정한다는 내용인데 요새라는 명칭으로 다양하게 존속이 인정되었습니다.


무가제법도는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만든 원화령이 대표적인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교토의 난젠사의 스덴이라는 스님이만든 초안으로 막부의 허가를 받지않고 혼인을 하거나 성을 보수하는 경우 막부의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새로운 성곽을 건축하지 말라는 내용 등입니다.

3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스의 경우 하야시라잔이라는 유학자에 의해 초안을 만들었는데 1년마다 교대로 근무를 의무화 하고 아내와 아이를 에도에 인질로 놔두고 사적인 관문 설치를 금하며 500석 이상의 큰 배를 만드는 것을 금지하였습니다.


에도 시대 초기에는 무가제법도를 위반하거나 후계자가 없이 세상을 떠나는 영주는 가차없이 영지를 가져버렸는데 근처에 있는 다이묘들에게는 큰 돈과 노력이 소요되는 에도로 향하는 길이라 돌아갈때마다 대규모 행렬을 짜 이동하였습니다.


나중은 일반 막부에서 가장 중요한 직책으로 현재의 내각 같은 것으로서 노중의 탑은 상석이라고도 하며 여러 사람이 임명되었는데 일반적인 업무는 매월 당번을 정해 담당하고 중요한 안건은 합의로 결정하였습니다.


에도 막부 말기에는 국내사무, 회계, 외국사무, 육군, 해군 각각 5명의 총재를 두고 전담하는 체계로 바뀌었습니다.

에도 시대가 되면서 영주의 조직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다이묘 영지 지배를 에도시대에 번이라 하였는데 영주 아래에 가신들이 있었고 급여 구조로는 에도 시대 초기에 전국 시대부터 힘있는 무사에 영지를 주고 그들에게 농민 지배를 인정하는 지방 지행제를 취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점차 영지는 이름뿐인 것으로 바귀었으며 무사들은 마을에 정착하여 공무원처럼 변해갔으며 영지의 모든 것을 연공에서 지급하며 조직이 영지 전체를 총괄하는 구조로 바뀌어 나갔습니다.


현재 훗카이도는 당시 쌀을 생산하기 어려운 장소여서 아이누와의 교역을 통해 자급지행제를 실시하였습니다.

조정에 대한 통제로는 귀족 무사법도라는 법으로 귀족들의 행동을 법률로 규제하였는데 천황은 법률에서 행동을 제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귀족의 법률과 무가의 법률에는 천황은 법 이상의 존재로서 아무런 규정이 되어 있지 않았지만 금중병공가제법도에서는 천황은 정치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의 말을 들으라는 것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영주는 가마를 타고 이동하였는데 걷지 않아도 되서 쉬워 보일것이라 생각하였지만 엄청난 거리를 이동할때에는 오래 앉아 있어야 해서 허리가 아플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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