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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카 시대

by 건강맨1213 2017.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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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에 즉위한 새로운 쇼군은 남북조이면서도 매우 복잡하게 적과 아군이 뒤섞인 큰 동란의 시대로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손자인 아시카의 시대가 드디어 종결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1368년 11세의 나이에 막부 제3대 쇼군이 되며 대장군에 취임한 아시카는 호소카와요리유키의 보좌를 받으면서 정지력을 확장하기 시작합니다.

2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 아키라때도 막부의 통지기구를 정돈하고 지금까지의 집사를 장군의 보좌의 지위로 증가하였습니다 1362년 시바에 임명된 것이 처음으로 다음이 호소카와 요리유키가 아닐까라고 생각되었는데 나중에 아시카가 가문인 호소카와, 시바, 하타케야마가 교대로 임명되어 사무라이 경찰의 상단인 서사에 임명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가마쿠라를 중심으로 동국 8개국은 가마쿠라 부가 설치되었는데 이것은 광동의 작은 무로마치 막부와 같은 것으로 막부 본체와 같은 본인만의 통치기구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그 탑이 가마쿠라 구보이며 후의 2대 쇼군이 되는 아시카가 요시아키라와 그의 동생이 임명된 이후에는 아시카 일족의 자손이 지위를 상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마쿠라 구보를 지지한 것이 관동 관령인데 출범 초기에는 우에스기, 고, 시바가 임명되었는데 아시카 씨가 기본으로 가마쿠라 구보가 나서서 우에스기 임명이 된 후 우에스기가 이 지위를 승계하게 되었습니다.


큐슈는 큐슈 동북의 무츠에는 오슈와 데와라는 통치기구가 설치되어 통치를 맡고 있었는데 규슈 단다이는 가마쿠라 막부의 규슈와 오해하기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장원 지배력을 수호하기 위해 호소카와 요리 유키는 천황을 보좌하고 다양한 정책과 막부 권력의 강화를 하였는데 수호 귀족이 가지고 잇는 장원의 연공중 절반을 가지고 있어 괜찮았습니다.

처음에는 아시카가 다카 우지가 1352년 오미노 오와리에서 특례로 인정받았는데 이를 공식적으로 제도화하고 황족이나 사찰 본부가 있는 장원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모든 장원을 영주와 무사들로 반반씩 하여 이미 장원에서 생산한 것의 절반이 막부의 것이 되어있는 상황에서 땅까지 절반을 내주라고 인정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자신의 토지를 확보한 것이 되었는데 무사위한 제도라고 했지만 현실에서는 토지의 대부분을 빼앗기는 것이 되어버렸는데 절반 이상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처벌한다며 토지 수호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였지만 오히려 환영한다는 측면도 있었으며 수호 청 제도에 주목하는 사람이 생겨 토지 회수를 수수료를 받고 대행해주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편리하게 보이지만 원래대로라면 무사가 마음대로 연공을 장원 등에서 회수하여 귀족이 안심하고 연공을 손에 넣을수 없었기 때문에 이같은 제도가 만들어졌고 귀족들은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일정량은 확실하게 손에 들어오게 되므로 장원에 경영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논밭의 면적에 의해 무로마치 막부는 자산세도 세금 으로 지불한다면서 유대 관계도 수호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논밭에는 소유권을 둘러싸고 재판중인 논밭에 대하여 한쪽 사람만 일방적으로 수확물을 거두는 불법 행위를 현지에서 단속하는 권한과 막부에 의한 재판의 판결을 현지에서 집행하는 사설 순회라는 권한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시카시대에 막부대신 다이묘가 각국의 정치를 담당하게 되어 수호 다이묘라는 것이 생겼고 이렇게 중세이후 국부는 결국 사라져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남조는 규슈 단다이에 이마를 기용하여 1372년 쇼군부의 거점인 다자이후를 공략하고 드디어 큐슈를 완전 점령하였습니다. 격렬하게 저항했던 쿠스노키를 항복시키는 등 막부의 권력 강화에 크게 공헌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세를 바탕으로 1378년 아시카의 교토 무로마치에 고쇼라 불리는 새로운 궁을 건축하고 이사하였는데 무로마치 도노는 정원에 사계정의 꽃을 심은데에 비롯한 애칭이었는데 무로마치 막부라는 용어도 이때 생겨나게된 것이었습니다.

아시카도 점차 성장하여 스스로 정치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였는데 호소카와 가문을 우대하고 유력 다이묘에 반발을 하였습니다.

고라큐 정변이라 하였고 지금까지 무로마치 막부의 권한은 대폭 강화된 남조 때문에 점점 힘을 잃게 되었고 에도시대의 다이묘인 구마모토의 호소카와 또한 그 후손인 호소카와 전 총리는 무로마치 시대에 활약했지만 전국시대에 몰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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