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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을 천황에게

by 건강맨1213 2017.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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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 내습전의 내용으로 돌아가 고후카쿠사 천황과 가메야마 천황 형제가 각각 자신의 후손들에게 황위와 황실을 상속시키려 전투를 벌였는데 결국인 가마쿠라 막부에 의해 차례대로 천황을 하면 되지 않느냐며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두 진영에서 서로 우리야말로 전통적이라는 주장이 계속 나와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양자의 불만은 계속 있었지만 가마쿠라 막부가 조정을 한 결과 하나의 조노 천황을 대신하여 다이카쿠지에서 고다이고 천황이 즉위합니다.


고다이고 천황이 즉위하고 가마쿠라 막부 타도를 향한 움직임이 시작하였는데 막부로서는 중재하였는데 이런 상황이 된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데 고다이고 천황은 원래 천황의 이름은 사후에 결정되는 것인데 나는 이고 천황과 무라카미 천황 시절의 황제 스스로가 정치를 하는 시대로 되돌려 놓겠다라고 갈망하고 자신을 고다이고 천황으로 자칭하는 특이한 천황이었으며 자신이 존경하는 다이고 천황의 후계자를 자칭한 것입니다.


고다이고 천황은 명분론에 따라 막부는 내 지휘하에 있어야 한다며 따르지 않는다면 멸망할 것이라하고 혈기왕성하여 인재를 확보하며 고다이고 천황은 스스로 정치를 하여 가마쿠라 막부를 전복시킬 계획을 하였습니다.


1324년 히노쿠란도 히노등 거병 일정까지 정하였지만 첩자가 막부에 밀고하여 사무라이 로쿠하라 단다이는 유배되었는데 훗날 참수되었으며 고다이고 천황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하여 무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포기하지 않고 1331년 2번째 거병을 계획했는데 거병전 계획이 발견되어 다시 부하들이 체포되어 고다이고 천황은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고 책임을 피할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반전공세를 본 고다이고 천황은 오키에서 탈출하고 이를 호응하여 호조씨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무사들이 속속 고다이고 천황 측에 참여하여 큰 힘이 되었는데 아사카가 교토부 오사카시에서 우리의 원수는 가마쿠라 막부다라고 하여 거병하고 교토에 쳐들어가 로쿠하라 단다이를 멸망시켰습니다.


이렇게 가마쿠라는 함락되고 호조 일족은 나가사키 등에서 자살하며 가마쿠라 막부는 멸망하여 정권을 천황에게 돌아갔는데 호조일족이 중간의 변덕으로 고다이고 천황의 음모를 밀고했는데 마지막에는 주요 호조 일족이 모두 자해하였습니다.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하여 150년만에 정권을 귀족들이 되찾았는데 고다이고천황은 교토로 돌아가 지금까지 관습과는 달리 관백과 섭정도 배제하고 천황 스스로가 정치를 시작하였는데 막부 멸망 이듬해 연호를 겐무로 개명하고 고대 중국 후한의 광무제가 왕망에 의해 납치되어 멸망한 한 왕조를 부흥시켰을때 사용된 연호를 생각하여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겐무 신정이라 불리는 고다이고 천황의 정치를 살펴보자면 정권 중추의 건물이 작아 권위를 나타낼수 없으니 황궁을 지어야겠다고 하였으며 화폐주조는 물론 어음을 발행하기 위해 지폐의 발행을 실시하였는데 화폐경제에 침투하기전에 끝나버렸습니다.


조직면에서는 중앙조직과 지방조직을 개편하고 영지가 누구의 것인가라고 하는것은 천황인 자신이 결정할 일이라며 토지소유권의 재확인을 공표해 버렸는데 무사들은 현재 소유자가 20년간 토지를 사실상 지배하는 경우 토지의 소유권을 변경할 수 없다는 현재 민법의 시효 취득과 비슷한 생각으로 안심하고 토지를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고다이고 천황에 가까운 사람들이 점점 출세함에 따라 정권 내부에서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였는데 정치가 생각처럼 풀리지 않고 사람들의 원성은 높아지자 그때마다 정책 변경을 강요하여 아침에 정해진 것이 저녁에 변경되는 일이 생기기 시작하였는데 이에 실망한 무사들은 새로운 천황을 옹립하고자 하였는데 이에 적합한 인물이 아시카가 다카우지라는 인물입니다.


가마쿠라 막부를 쓰러뜨린 니타요시사다는 라이벌인 진안인 미나모토요리토모의 자손이 끈어진 이후 내가 겐지의 주류라고 생각했는데 가마쿠라 시대에는 아시카 쪽 집안이 정상으로 인식되어 있었던 것이었는데 가마쿠라 시대의 아시카가 호죠에는 거역하지 않는 정책을 취하고 아시카가 호조 마사코의 여동생을 아내로 하는등 역대 당주는 호조의 아내로 맞이 하고 있을 정도로 다카우지자신과 아내는 호조가문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가마쿠라 막부 멸망 후에 무사시 보수와 중용되고, 고다이고 천황의 이름에서 존자를 받아 고씨에서 다카우지로 개명하게 되는 등 상당한 우대를 받고 있었는데 다카우지는 내가 무가의 대장으로 막부시대를 열거다라고 분발하였습니다.

고다이고 천황의 황자는 아시카가 다카우지를 중심으로 막부를 열게 해버리고는 무엇때문에 우리의 손에 정권을 되찾은지 모르는것이 없거나 오히려 나를 중심으로 무사를 모으고 싶다라고 생각하였는데 막부를 멸망시킨 숨은 공로자로 막부 멸망 후 대장군에 임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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