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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 침공

by 건강맨1213 2017.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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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 내습은 중국, 조선과 몽골의 움직임에 대해 내용입니다. 타리라노키요모리가 송일 무역으로 부를 축적했지만 이 무렵에 중국 전역을 지배하고 있던 송은 중국 동북부에서 세력을 확대한 여진족에 대한 금이라는 국가에 의해 중국 남부로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금은 중국전역을 지배하지는 않고 중국 화북쪽은 금이 화남쪽은 송이 지배하는 구조였는데 남쪽으로 쫓겨난 송나라를 역사학에서는 남송으로 편의상 구분하였고 지금까지의 송나라를 북송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한반도에서는 고려가 삼국통일 이후 계속 다스리고 있었는데 고려에서는 관료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시험 제도가 있었는데 실제로는 특권계급층이 자신들의 아들들을 위한 별도의 기준을 채택하고 있었는데 점차 지배 계급이 고착화 고정화 되고 그들의 자식들 끼리 결혼시켜 친척관계가 되어갔습니다.


그런데 관료들에게는 2개의 파벌이 있었는데 문관과 무관이 그것입니다. 왕이 남쪽을 향해 앉고 열리는 회의장에서 문관은 동쪽에 무관은 서쪽에 좌석이 있는것으로 양반으로 총칭되었는데 각각 이름의 유래는 문인계 관료와 무인계 관료를 기원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두 파벌은 문관아래 무관이 있었는데 무관이 점차 불만을 가지고 1170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획득하고 새로운 왕을 옹립하여 문관을 학살하였는데 이것이 무인의 난이며 경인년에 일어나 경인난이라고도 합니다.


이때 정권을 장악한 이가 최충헌인데 그의 개인 군대인 삼별초에 의한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국왕조차 능가하는 권력을 잡게 되었으나, 주민들에 대한 지나친 과세에 의해 민란이 자주 발생하였기 때문에 점차 국력이 쇠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무렵 몽고는 서방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한 중동 정복보다 더 규모가 큰 징기스칸이 지배하는 한나라가 세계정복을 시작하는데 원래 몽골 초원의 한 부족을 이끌던 테무진이라는 족장이 어린시절 부족의 장이었던 아버지가 적대적이었던 타다르 부족에 의해 독살되어 버리고 아버지의 부하들로부터 버림받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거친 초원의 세계에서는 강한 지도자가 없는 부족은 해체의 운명에 놓이게 되었는데 이때 테무진은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점차 동료를 만들고 아버지의 동지였던 사람의 도움도 받으면서 자신의 군사적인 재능을 통해 몽골 초원의 각 부족들을 거느리고 통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206년에 지도자로 추대되게 되어 세계 제국이 되는 몽골 제국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징키스칸의 한에서의 한은 터키어로 왕이라는 의미입니다.


몽골 제국은 강력한 기마부대를 거느리고 있어 빠르게 치고 빠지는 전술로 공격을 하였는데 자신을 따르는 도시는 보호하고 따르지 않는 도시의 주민들은 학살하여 나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라는 분위기를 만들어 먼저 항복하게 하자는 분위기를 조성하여 주변 국에 대해서 빠르게 영토확장을 하는 한편, 상인들이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하여 상업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여 재산을 축적하였습니다.

징키스캉이 죽은후 그 후손들도 각각 자신의 세력을 가지고 동쪽으로는 중국과 서쪽으로는 이라크와 폴란드 근처까지 점령하고 유라시아 대륙 국가의 대부분에 영향력을 끼쳤는데 고려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1234년에 중국 화북지역에 있던 금나라를 몽고 침공하여 멸망하였습니다.

또한 6차례에 걸친 고려에 몽고침공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고려는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 저항하였는데 그때 쿠데타가 발생하여 최씨 정권이 내부에서 제거되었으며 몽고의 5대 칸인 쿠빌라이 칸이 일본을 노리게 되었는데 삼별초가 철저한 항전을 펼치며 강화도에서부터 제주도까지 격렬하게 저항을 하였는데 이로인해 일본을 공격할 경황이 없었고 이것이 삼별초의 난이었는데 삼별초는 일본에 구원 요청을 했지만 멍청한 일본 귀족놈들은 어떤 상황인지 몰라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5대 칸인 쿠빌라이가 즉위할때 그의 즉위를 반대하는 부족이 많았고 그때부터 실질적인 몽고는 분열해나가기 시작하며 몽골인의 특권을 지키면서도 관료 제도도 만들어 중국 국가를 오나성해 나가고 있었고 수도도 몽골의 카라코람에서 현재의 베이징으로 이동하였으며 중국 화남지역의 남송이라는 국가를 침략하던중 쿠빌라이도 일본에 주목하였는데 일본과 남송이 손잡고 무역을 하였는데 나중에 고려왕으로 즉위한 충렬왕은 일본도 고려처럼 되야 한다며 쿠빌라이에게 진언하였다고 합니다.


쿠빌라이는 고려를 통해 일본과 협상하려 가마쿠라 막부에 국서를 보냈는데 당시 막부는 호조도키무네가 8대 쇼군에 집권하면서 응답할 필요 없다며 묵살하여 버렸습니다.

그 후에도 몇번이나 쿠빌라이가 국서를 보냈지만 무시하게 되어 고려의 마산에서 대마도와 이키를 공격하여 몽고 침공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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