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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와라 미치나가의 시대

by 건강맨1213 2017.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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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와라일족의 최 전성기를 이끈 인물중 하나인 후지와라 미치나가의 시대입니다.

후지와라 미치나가는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로 상위에 있었던 적은 거의 없지만 지명도 만큼은 최고의 인물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그 지위가 높았던 것은 아니었고 보통이었다면 그럭저럭한 지위를 가진 귀족 정도의 인생에서 끝나는 것이었는데 맏형인 미치 타카가와 둘째 도로겸이 잇따라 사망함에 다라 갑자기 후지와라 최고의 직위인 일족의 장자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의 라이벌은 더이상 없는것 같았지만 후지와라미치타카의 아들이 라이벌로 지목되고 어느쪽이 후지와라 일족의 최고를 차지할 것인가를 모두가 주목하고 있었는데 역사를 움직인 것은 미치나의 누나로 엔유천황의 황후였던 후지와라였습니다.


그녀는 이치조 천황의 어머니로서 큰 정치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가라를 관백에 준하는 지위를 준다고 하여 포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이를 조토쿠의 변화라 하고 범인으로서 잡힌 이탈리아 주군은 다자이에 이즈모로 좌천되고 로마교황은 여성스캔들이 전혀 없는 인물에 의미를 모르는 복장을 입는등 기행이 끊이지 않고 이상한 에피소드 들이 많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미치나 라이벌을 이기고 후지와라일족의 정점에서 일족의 장자가 되었는데 미치나 역시 딸을 천황의 황후로 만듬으로써 외적으로 권력을 장악하려고 하였는데 이치조 천황은 이미 후지와라데이시가 중궁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황후로 추대하여 자신의 딸 이키코를 중궁하였습니다.

그리고 산조 천황이 즉위하자 딸을 그의 중궁에 옮겼지만 산조 천황의 눈 밖에 나버려 아키코가 낳은 황태자를 즉위시켰는데 그가 고이치조 천황이고 미치나는 염원의 섭정 지위에 정식으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귀족의 결혼 형태는 결혼하면 남자가 여자의 집에 사는 형태였는데 아이는 아내의 집에서 길러지고 있어 여성집쪽이 권력이 강한 것으로 통하였고 남자는 다양한 여성과 결혼하였기 때문에 오늘은 남편이 와주지 않아서 외로웠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는사이 미치나의 손자이기도한 고레이 제 천황의 뒤를 이은 그의 동생 고 산 조 천황이 고 스자쿠 천황고 산조 천황의 달 이다 사다코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미치나가 출가한 1019년 규슈 북부쪽에 여진라는 집단이 대선단을 이끌고 쳐들왓는데 이 집단은 나중에 중국에서 금과 청 등 국가를 설립하는 여진족의 일부가 되었다고 생각하였지만 이키와 쓰시마를 덮쳐 후쿠오카시까지 쳐들어온것을 보면 일본역사에서 보기힘든 외세의 침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를 방치해두면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일꾼이 줄어들거나 하는 위험성이 발생되어 큐슈의 호족들과 무사를 이끌고 격퇴하였습니다.

 화려한 귀족 문화의 그림자에서 다이라노마사카토의 난과 후지와라 스미토모의 난 등 지방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었는데 이러한 가운데, 지방의 무사단을 통솔하고 후지와라 미치나가의 시대 동쪽으로 세력을 확대해 나갔는데 두 세력이 겐지와 헤이입니다.


겐지는 출신이 다양한데 사가천황의 자손이거나 우다천황의 자손이거나 히카루 겐지거나 등 가상의 설정이며 세이와 천황의 자손이며 게이 센지, 이미 후지와라 스미토모의 난떄 등장한 미나모토 쓰네모토의 아들이며 그들은 오사카를 거점으로 중앙의 라인을 만들었으며 그 사이 아들인 미나모토 요리미쓰는와 그의 형제도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이코는 주동자의 목을 치고 무예의 달인으로도 명성이 높았떤 사람이며 다이라노사다모리의 흐름을 이어받은 샤오핑에 반란을 억제하여 분배 시키려 하였는데 실패하고 반란을 진압하였습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미나모토요시이에는 그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싸우는 힘을 잃어 데와를 지배하는 일족에게 원군을 요청하고 이것이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아베에 대체하여 다른 아베 일족은 유배되고 12년이 걸친 싸움은 종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간파쿠였떤 후지와라등 조정도 논공행상에 겐지의 세력신장을 두려워하고 영전이라는 목적으로 보수에 임명 이요보수는 아주 좋은 무츠에는 겐지의 세력을 만들지 않도록 하였으며 그무츠는 기요하라가 진수부 장군에 임명되어 단번에 지배를 굳혀나갔습니다.

아베씨가 각지에 건설된 요새인 가로장은 격전의 땅이었고 약 5년동안 평화가 유지되고 있었는데 무츠보수 임기 마지막해인 1056년 누군가에 습격당해 말을 뺏기는 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을 짐작하는 도중 아배의 아들이 틀림 없다며 놈은 내 동생을 시집보내면 좋겠다고 지난해 말해온것이지만 거절한 것을 원망한 것이 틀림 없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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