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4대 천황을 섬기며 54년 총리를 지낸 소가노우마코는 626년에 사망했는데 가독을 이은것이 장관에 취임하고 절대적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었는데 628년 차기 천황에 대한 명확한 의사표시가 없는 스이코 천황이 후계자를 누구로 할지 정하지 않았는데 여동생의 남편이었던 타무라 황태자를 즉위시키고 싶었는데 일각에서는 쇼토쿠 태자의 아들인 산노미야왕을 추천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이 산노미야 왕을 지지하는 대표 주자는 사카이 마리하지이고 일설에 의하면 소가노 우마코의 동생이라고도 하며 소가 일족의 장로격인 존재였다고 알려졌는데 누구를 차기 황제로 즉위시키는가에 따라 소가씨 일족 내부에서의 권력 투쟁적인 의미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부타마 이치세의 설득이 불가능하여 강경수단으로 그를 죽이고 말았으며 그렇게 타무라 황태자가 즉위하였으며 조메이천황이 되었습니다.
조메이천황은 절대권력을 근거로한 제멋대로의 행동이 많았으며 주변에서 상당히 경계가 심했는데 조메이 천황의 삼촌인 오우는 제대로 근무시간을 정해서 일하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오우에만 국한 된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근무태도가 형편없었는데 충신들이 충고를 하였지만 무시하였습니다.
643년 소가노이루카가 권력을 손에 넣고 소가노이루카는 조속히 라이벌적인 존재가 되었는데 군사를 움직여자신을 공격하여 자해에 몰아넣고 아스카에 이루카를 암살하라고 하였습니다.
필연적으로 소가씨가 나쁜 가문인것처럼 취급되었지만 이상적인 국가관의 차이와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정책 등 정치적 충돌에 의해 발생한 권력투쟁적인 면에서 강하고 이후 헤이한 시대까지 계속 후지와라 씨의 첫번재 권력투쟁이 소본가도 배제한다고 말했습니다.
소가씨의 막강한 권력이 망하고 토쿠천황을 즉위시키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였는데 당나라처럼 연호를 정하여 대화라고 사용하였고 대화2년에는 칙령을 발표하여 공포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개혁을 다이카개신이라고 다이카개신과 백강전투 하였는데 실행 되었는지 신뢰성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있지만 천황중심의 국가로서의 정비가 진행되고 있었으며 불행히도 모반혐의를 받고 자살하였습니다.
이시카와 마로의 이복동생인 소양지가 동생이 천황을 암살하려고 하였다고 고자질하였는데 천황이 이것을 믿은 것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토쿠천황과의 대립이 격화되고 아스카 천도 난바 궁에는 토쿠천황이 방치되고 고교쿠천황이 다시 방치됩니다.
이 정변 극중 고토쿠천황이 아들 아리마 황자는 정세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아카에 모반을 권유하여 궐기를 결심하였는데 배신당해 체포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야마토 정권은 관동지역에서 서쪽이 권력의 다이카개신과 백강전투 기반이었지만 적극적으로 동북 진출을 시작하기 위해 동북에는 조정의 세력을 따르지 않는 하이라는 세력이 있었는데 어떻게든 따르게 만드는 것이 야마토 정권의 비원이었습니다.
647년에 아베노 히라 후 수군을끌어 쓰가루로 진출하여 연안부정도밖에 진출하지 못한 데 현지의 수장에 임명된 유지하는가라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칙령입니다.
1. 모든 토지와 인민은 국가의 것으로 규정합니다.
2. 중앙지방행정 구역을 정하고 군사시설 정비합니다.
3. 전국에 통일적 세제를 만들기 입니다.
그리고 기존 성에서 오사카시의 나니와 궁으로의 천도입니다.
661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을 통해 백제가 결국 멸망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