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의학자인 허준애 대한 내용입니다.
허준은 1539(중종34) ~ 1615(광해군7) 조선 중기의 의관입니다.
자는 청원, 호는 구암, 본관은 양천이며 30여년동안 허준 조선의 의학자 왕실병원인 내의원의 어의로 활약하는 한편 동의보감을 비롯한 8종의 의학서적을 집필하여 조선을 대표하는 의학자로 우뚝섰습니다.
허준은 뼈대 있는 무관의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 허론과 양반가문 출신인 어머니 영광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어머니의 신분이 정실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신분은 중인으로 규정되었습니다. 이러한 신분때문에 문무관보다 천하다고 여겨진 의관의 길을 택하는데 작용하였고 그럼에도 훌륭한 가문의 배경덕에 허준은 어려서부터 경전역사의학에 관한 소양을 충실히 쌓을 수 있었습니다.
허준이 언제 어떻게 의학을 공부했으며 의관으로 어덯게 나아갔는지 알려주는 자료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으나 관직으로 볼때 허준의 장년 이후의 삶은 세 시기로 나뉩니다.
첫째 내의원 관직을 얻은 1571년부터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까지이다.
이 21년 동안 허준은 내의로서 크게 이름을 얻기는 햇찌만 최고의 지위에 도달하지는 못하였는데 선조23년 허준은 왕세자의 천연두를 치료한 공으로 당상관 정3품의 품계를 받았는데 이 품계는 경국대전이 규정한 서자 출신인 허준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관직인 종3품의 한계를 깰 정도의 큰 상이었습니다.
둘째 선조25 임진왜란 이후 선조가 승하하던 1608년선조41때까지 허준이 선조의 의주 피난길에 동행하여 생사를 같이함으로써 그는 선조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었습니다. 선조29 왕세자의 허준 조선의 의학자 난치병을 고친 공으로 중인 신분에서 벗어나 양반 중 하나인 동반에 적을 올렸으며 선조37년에는 임진왜란 공신 책봉이 있었는데 허준은 호성공신 3등에 책정되는 한편, 그는 본관인 양천의 읍호를 받아 양편군이 되었는데 이와 함께 품계도 승진하여 종1품 숭록대부에 올랐습니다.
선조의 중환을 호전시킨공으로 사간원 사헌부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쳐 선조는 그에게 조선 최고의 품계인 정1품 보국숭록대부를 주고자 했으나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셋째 선조41년부터 그가 죽던 해인 광해7년까지 이 7년은 시련기로 선조 승하의 책임을 지고 벼슬에서 쫓겨나고 먼 곳으로 귀향을 가는 등 불문이 있었고 귀양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구너세가 없는 평범한 내의로 지내다가 고요하게 삶을 마쳤으며 1608년 선조41년 선조가 병으로 승하하자 그것이 수의인 그의 잘못이라는 탄핵을 받아 허준은 삭탈관직되는 한편 의주 유배형이 되었고 그의 유배는 1년8개월이 지난 광해1에 풀렸으며 6년 후인 광해7 세상을 떴습니다.
사후 조정에서는 그의 공을 인정하여 정1품 보국숭록대부를 추증하였으며 의관 허준의 출세는 조선의 역사에서 거의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파격의 연속이었으며 그의 의술 솜씨와 우직한 충성이 빚어낸 성취였다고 할수 있습니다.
양반에게 굽실거리지 않으며 임금의 은총을 믿고 교만스럽다는 세평으로 이를 질시한 양반계급의 불만도 작지 않았습니다.
허준은 어의로 재직하면서 내의원의 의학서적 집필을 도맡았으며 그가 저술한 책으로는 8종이 있었으며 크게 네 부류로 대별되는데 첫째 종합 임상의서의 집필로 동의보감(1613)이 해당되고, 둘째 일상생활에 요긴한 한글 번역이 달린 의서로 언해태산집요, 언해구급방, 언해두창집요 등이 그것인데 전염병 전문의서로 책은 허준 조선의 의학자 각각 아이의 해산에 대한 의학적 지식 구급 상황에 대한 발빠른 대처, 소아전염병인 천연두에 대한 의학적 대응을 실었고 최근에 연대미상인 언해납약증치방이 허준의 저작으로 추정된다는 기록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책은 가정상비약인 납약을 올바로 쓰는 지침을 담고 있습니다.
셋째 신찬벽온방 벽역신방의 편찬이 그것이고 신찬벽온방은 열성 질환인 온역에 대한 대책으로 내놓은 것으로 벽역신방은 1613년 국내에서 첫 유행했던 성홍열에 대한 책입니다.
넷째 학습용 의학교재인데 허준 최초의 저작인 찬도방론맥결집성이 그것이며 이 책은 당시 전의감의 과거시험 교재로 쓰이고 있던 동일한 책의 오류를 바로 잡는 것이었습니다.
허준의 책 중 가장 주목할 책은 동의보감인데 어느 시점에서 허준이 단독으로 이책은 왕명으로 선조29년에 시작되어 14년 후인 광해준2에 완성을 보아 광해5에 출간되었습니다.
애초에 허준을 책임자로하여 유의 정작 다른 어의인 양예수 김응탁 이명원 정예남 등 5인의 공동 작업으로 시작했으나 정유재란으로 중단된 상태에 있다가 완성시켰다.
선조41 유배이후 허준은 연구에 전념할 시간을 얻게 되었고 유배지에서 단시간에 책의 절반이상을 집필하였습니다.
허준은 양생 사상을 중심으로 하여 중국 의학이론과 허준 조선의 의학자 처방의 난맥상을 바로잡고 향약 사용의 이점을 최대화하여 최소한의 약의 분량으로 최대한의 의학적 효과를 얻으려고 힘썼고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진 조선 사회 회복의 일환으로 획기적인 의학의 제공이라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세계질병사의 관점에서 볼 때 벽연신방도 크게 주목을 끌며 허준은 성홍열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이 미지의 병이 홍역을 비롯한 유사한 질환과 구별되는 병임을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