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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해인사 조선의 사찰1

by 건강맨1213 2017.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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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역사에 대한 내용 1번째 입니다.


정의경상남도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합천해인사 조선의 사찰1 가야산에 있는절입니다. 사적 제504호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본사이며 의상의 화엄10찰 중 하나고 팔만대장경판을 봉안한 법보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의 종합 수도도량이며, 이 절은 신라 애장왕 때 순응과 이정이 창건하였습니다.


신림의 제자 순응은 명명하였던 혜공왕2 중국으로 구도의 길을 떠났다가 수년 뒤 귀국하여 가야산에서 정진하였으며 802년 애장왕3 해인사 창건에 착수하여 이소식을 전해 들은 성목태후가 불사를 도와 전지 2500결을 하사하였으며 순응이 갑자기 죽자 이정이 그의 뒤를 이어 절을 완성하였습니다.


해인은 화엄경 중에 나오는 해인삼매에서 유래한 것이며 따라서, 해인사는 화엄의 철학 화엄의 사상을 천명하고자 하는 뜻으로 이루어진 화엄의 대도량입니다. 창건주인 순응은 그의 창사의 이념을 법손으로서 해인삼매에 근거를두고 해인사로 명명하였던 화엄의 철학 화엄의 사상을 널리 펴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창사의 정신은 뒷날에도 오래오래 받들어져 고려 태조의 복전귀의를 받았다는 뜻이었던 희랑이 이곳에서 화엄사상을 펼쳤습니다. 

현재 해인사의 사간장경 중에 화엄 관련 문헌이 합천해인사 조선의 사찰1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를 입증하는 자료가 됩니다. 특히 고려 태조는 희랑이 후백제 견훤을 뿌리치고 도와준데 대한 보답으로 이 절을 고려의 국찰로 삼고 해동 제일의 도량으로 만들었으며, 희랑이 후백제와의 전쟁에서 태조를 도와 승전하게 하였으므로 태조는 전지500결을 헌납하여 사우를 증건하게 하였습니다.


태조7에는 세조는 장경각을 확장 강화도 선원사에 있떤 팔만대장경판을 지천사로 옮겼다가 이듬해 이곳으로 옮겨옴으로써 해인사는 호국신앙의 요람이 되었으며 개수하였습니다. 


성종14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해인사 중건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인수왕비와 인혜왕비가 학조에게 공사를 감독할 것을 명하고 대장경판당을 중건하였으며 또한 3년간의 공사 끝에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법당과 요사 160칸을 신축하였습니다.


그러나 뇌음이 중건 성파가 중건 숙종21에 화재로 요러 요사와 만월당 원음루가 불탔으며 그 이듬해 봄에 또 불이나서 서쪽 여러 요사와 무설전이 불타버리자 또 화재로 인해 큰 축대 아래 수백 칸이 불타버렸지만 당시 경상도 관찰사 김상성의 도움으로 능운이 증건하였으나, 또 1763년에 실수로 불이 났으나 관찰사 김상철의 협조로 설파가 중건하였으며 정조4에 불이 나자 중건하였습니다.


순조17에 다시 큰불이 나서 수천 칸이 합천해인사 조선의 사찰1 모두 불타버렸는데 관찰사 김노경의 도움으로 영월 연월 등이 소규모로 중건하였으며 고종8에 법성료가 다시 불에 탔습니다. 이와 같이 이 절은 창건 이래 수많은 화재를 겪었으나 장경각만은 온전히 보전되어 오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불교 탄압시에 36개의 사찰만을 남겨둔 적이 있었는데 현재는 말사 궁현당 일주문 그때에 해인사는 교종 18개 사찰 중의 하나로서 남아 전답 200결과 승려100명을 지정받았고, 1902년 원흥사를 전국의 수사찰로 정하고 전국에 16개 중법산을 두었을때는 영남 중법산으로 수사찰이 되었으며 본산이 되었습니다.


부속 암자 16개를 거느리고 있는 법보종찰이며 선원 강원 율원 등을 갖춘 총림으로서 한국불교의 큰 맥을 이루고 있고 있습니다. 

이절의 당우로는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극락전 관음전 응진전 조사전 퇴설당 청화당 궁현당 구광루 경학원 선원 우화당 보경당 적묵당 선열당 사운당 독성각 해탈문 봉황문 일주문등이 합천해인사 조선의 사찰1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 소장된 중요문화재로는 대장경판과 장경판전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권13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 국보제206호보물제734호 합천해인사 석조여래입상 원당암다층석탑및석등 합천 반야사지 원경왕사비 보물제128호 합천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해인사 영산회상도 사간장경 중의 보물 다수가 있습니다.


대적광전 제월과 성안이 건립한 것으로 내부에 봉안된 비로자나불과 문수보살상 대적광전은 법보사찰 해인사의 중심법당이며 창건이후 건물의 자세한 내력에 대하여는 알수 없으나 현건물은 1817년순조17 보현보살상은 해인사 대적광전 비로자나불 삼존상으로 불립니다.


본래 성주군 금당사에 봉안되었으나 비로자나불과 문수보살 이절이 폐사될때에 용기사로 옮겨졌다가 범운에 의하여 현재의 위치에 봉안되었으며 보현보살도 함께 봉안되어있습니다. 비로자나불상등에서 충숙왕13에 만든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시대 의복, 지공의 문수최상승무생계법 계첩을 비롯한 여러 유물과 불단 진단구에서 통일신라시대의 금동여래입상 2점등이 출토되기도 하였습니다.


장경각은 법보사찰 해인사의 기본정신을 대변해 합천해인사 조선의 사찰1 주는 건물인데 완전무결한 걸작으로 인정받는 건물입니다.

고려대장경판을 봉안해둔 2개의 판전으로서 경판의 보관을 위한 가장 과학적이고 장경각은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그 안에 소장된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하였으며 현재 고려대장경판의 영인본은 고려대장경연구소에 의해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진행된 전산화 작업을 통해 디지털화가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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